발망12f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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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커피프린스2호점 조회 4회 작성일 2020-11-21 23:50:2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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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알고 입자!] 한 때 중,고등학생들의 로망이었던 브랜드 발망을 소개합니다.

2010년대 중반 이 브랜드의 바이커진이 열풍이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 바이커팬츠의 디자인이 가품으로 쫙 깔렸었고, 당시 좀 논다하는 중 고등학생
 
들이 레플리카를 엄청 입고 다녔었는데요? 하지만 이 브랜드의 역사는 1945년 부터
 
시작됩니다. 바로 브랜드 발망입니다
 
[인트로]
 
발망은 피에르 발망이라는 인물에 손에서 탄생한 브랜드입니다.
 
피에르 발망은 프랑스 사보이 지역의 작은 고산 마을에서 태어납니다.
 
당시 피에르 발망의 아버지는 신사복점을 운영하셨고, 어머니는 숙녀복점을 운영하고
 
계셨는데, 발망이 유년기에 어머니의 숙녀복점에서 옷감과 드레스를 만지며
 
놀던 기억이 가장 행복했다 라고 이야기 했을 만큼 자연스레 패션 환경에 노출되어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그렇게 피에르 발망은 가게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으며
 
종이인형을 만들어 옷을 입힘으로써 패션에 대한 감각을 키워갔습니다.
 
피에르 발망이 7살이 되던해에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발망과 그의 어머니는
 
사실 아버지의 사업이 몇번의 실패를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돈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렇게 11살이 되던 피에르 발망은 기숙학교를 다니며 장학금을 받았고
 
이후 대학 진학을 패션쪽으로하고 싶었지만 어머니의 반대로 결국
 
파리의 에콜 데 보자르에서 건축을 공부했습니다.

여담으로 지방시 또한 이 대학교에서 순수미술을 공부하였다고합니다.
 
하지만 건축학을 공부하기에는 피에르 발망은 적합하지 않았고
 
건축보다 패션 스케치에 더 관심을 가져 학교를 다니며 완성한 일러스트를
 
디자이너 "로베르 피게" 에게 보냈고 그 중에서 3개의 디자인이 판매가 되게 됩니다.
 
발망은 이것을 시작으로 1934년 에드워드 몰리뉴의 보조 디자이너 제안을 받고
 
본격적으로 패션계에 첫발을 내딛기 시작했습니다.
 
에드워드 몰리뉴 밑에서 그와 함께 5년을 근무했던 피에르 발망은
 
뤼시앵 를롱의 패션하우스로 자리를 옮겼지만, 그의 패션의 감성과
 
발망의 감성은 맞지 않았고, 금방 그를 떠나 고향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이후 제 2차 세계 대전이 터지고 그는 프랑스 군대 공군으로 시간을 보냈고
 
전쟁이 끝난 후 그는 다시 뤼시앵 를롱의 제안을 받아 함께 일을 시작했고
 
그곳에서 우리가 모두 아는 그 디자이너 크리스챤 디올을 만나게 됩니다.
 
그곳에서 협력자로써의 역할을 하며 의견을 주고 받고 서로에게
 
영감을 주며 작업을 함께 하며 커리어를 쌓게 됩니다.
 
이후 같은 엘레강스 라는 공통의 취향으로 함께 새로운 하우스를 만들기를 
 
약속과 많은 대화를 나눴지만 크리스티앙 디오르가 결정을 망설였고 
 
그렇게 서로에게 배신감을 느끼게 됐고
 
결국 발망은 혼자 하우스를 오픈하게 됩니다.
 
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많이 피폐해져있던 파리의 하우스들은 재건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1949년 초 뉴욕에 발망 부티크를 열게되었고,
 
1950년대 발망과 디올, 스페인에서 온 발렌시아가 등 당시의 패션을 이끌며
 
나아가게 됩니다.
 
특히 1952년 부터 1957년까지 5년 동안 꾸준히 선보인 '졸리 마담' 컬렉션은
 
발망을 대표하는 룩이 되었고
 
당시 케더린 헵번, 마르그레테, 시리키트 같은 다양한 국가의 왕비들에게
 
사랑을 받으며 세계적인 디자이너로써의 자리를 잡게됩니다.
 
또한 소피아 로렌, 브리지트 바르도, 비비언 리 등 많은 여배우들의 영화,
 
연극 의상을 디자인 하기도 했고
 
1970년엔 기성복 라인을 확장했습니다.
 
하지만 발망이라는 브랜드는 창립자였던 피에르 발망의 죽음으로
 
1982년 위기를 맞게 됩니다. 발망의 죽음과 동시에 브랜드 발망은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했고, 그를 이을 디자이너의 부재, 피에르 발망이라는 브랜드의
 
무분별한 라이센스 판매로 저가 상품의 난입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고 합니다.
 
물론 디자이너가 공석으로 있었던건 아니었습니다.
 
피에르 발망의 오른손이었던 에릭모르텐센 이 부티크를이끌었고,
 
발망의 정신을 이어가기 위해 노력했고습니다.
 
하지만 꾸준히 컬렉션을 선보이다 결국 1990년에 발망 부티크를 떠나게 됩니다.
 
이후 Erik의 조수였던 허베 피에르가 1990년부터 1992년 까지 3번의 컬렉션을
 
맡아 진행하게 됩니다.
 
허베 피에르는 1987년  프랑스 콜베트위원회 로부터 첫 번째 Christian Dior 상을 받은 인물
 
이었습니다.
 
이후 허베 피에르가 떠나며 오스카 드 라 렌타가 그 뒤를 이어 1993년 부터
 
2002년까지 발망 하우스를 이끌었습니다.
 
오스카 드 라 렌타는 어릴적 학업을 지속하기 위해 잡지 광고용 일러스트레이션을
 
그리는 알바를 했었는데
 
드 라 렌타의 스케치를 눈여겨본 발렌시아가가 맘에 들어 그를 채용하여
 
전세계 고객들에게 보낼 카탈로그용 일러스트레이션을 그리기도 했었습니다.
 
이후 2005년 발망은 옛 영광을 살리기 위해 피에르 발망의 이름을
 
발망으로 줄여 이미지의 혁신을 만들었고
 
파코라반의 수석디자이너 크리스토프 데카르넹을 영입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합니다.
 
그렇게 크리스토프 드카르냉이 2009년 S/S 컬렉션을 통해 선보인
 
파워숄더룩 이 엄청난 히트를 치게 되고
 
마돈나, 케이트 모스 , 비욘세등 할리우드 스타들이 열광했습니다.
 
한국에서는 고소영이 입어 유명해졌습니다.
 
재킷과 더불어 바이커진 마저 대박을 치게 되고 당시 '발마니아'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며 브랜드의 새로운 전성기를 맞게 됩니다.
 
2011년 발망은 FW 컬렉션을 끝으로 크리스토프 데카르넹과의 결별을 선언했고
 
이후 올리비에르 루스테잉이 발망을 이끌어 갑니다.
 
그는 2009년에 발망에 합류했었으며 프랑스 에스모드를
 
졸업한 이후 5년동안 로베르토 카발리에서 경력을 쌓다
 
발망으로 옮긴지 3년만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된 것이었죠
 
당시 2012년 26살에 나이로 유명 브랜드에 디자이너가 된다는것이 이례적인
 
일이었는데
 
루스탱은 당시 인터뷰에서 자신이 어린 나이에 놀란것이 아니라
 
유색 인종이라서 당황해했다 라는 점에서 더욱 놀랐다고합니다.
 
그는 화려한 데뷔와 동시에 현재까지도 발망을 이끌어오고 있습니다.
 
 
이후 발망은 2012년 피에르 발망이라는 세컨브랜드를 내놓았고
 
2015년 발망과 H\u0026M의 콜라보 레이션은 당시 1주일부터 노숙 대란을 일으켰습니다.
 
현재까지도 발망은 이전의 전성기 만큼은 아니지만, 높은 인지도로 현재까지도 
 
꾸준한 매니아층을 쌓고 있는 브랜드입니다.
 
항상 더 좋은 영상 제작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패담항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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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만에 알아보는 발망에 대한 10가지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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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널쇼퍼룸의 다과가 특별한 것은 없어요. 4층 다이아몬드 라운지와 거의 똑같아요. 단지, 아이스크림은 안된다는 것..ㅠ.ㅠ 아마 의류를 착용하는 공간이래서 그런가??? 3명갔는데, 다니가 2가지 음료로 고민하니까, 둘다 가져다주시는 센스^^

@발망 SS 디자인
발망의 여름패션에는 항상 나오는 색상과 디자인이 있어요. '청'으로된 제품이 항상 나와요. 작년에도 그러했고, 올해에도 역시나 청의류가 나왔어요. 또한, 여름하면...'흰색'이죠? '블랙'의상보다는 흰색의 제품들이 항상 발망SS시즌에 나오는 것 같아요.그런데, 한두푼 하는 가격이 아니다보니, 재질을 신경을 참 많이 쓰는 것 같아요. 좋은 재질을 사용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두께도 두꺼워지게되고...그래서 발망은 SS상품이라고 해서 절대~~~얇지 않아요. 솔직히 발망옷은 봄,여름신상품은 여름만 빼고 봄,가을,겨울 모두 입을 수 있어요. 그만큼 두껍기때문이에요. 발망이미테이션을 보신적이 있으신가요? 저는 지하상가쇼핑몰에서 판매하는 것을 봤어요^^;;; 두께를 따라가지 못하더라구요. 같은 니트라도 1/2두께에요. 언뜻볼때 외관은 비슷한데, 재질이 달랐어요.그래서 모조품은 정품을 따라 갈 수 없는 것 같아요.

@발망 원피스가격? 발망자켓 가격? 발망스커트 가격? 얼마?????
발망 가격대는 단순한 흰색티가 아니고서는 왠만하면 200만원이상이에요. 화려하다 싶으면 약600만원,발망코트는 약1000만원. 발망원피스는 보통 약400-600사이가 많아요.

@발망 옷을 저렴하게 사고 싶은데 방법없나요?
저렴하게 사려면, 어디로 가야할까요? 발망상설매장. 을 가면되어요.
그런데, 발망 상설매장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것으로 알고 있어요. 김포현대 아울렛에 발망 상설매장이 있어요. 하지만... 백화점에서 팔다 남은 옷들이 가기때문에 내가 원하는 디자인이 있을지, 또는 사이즈가 있을지..고민될수있어요. 발망에서 워낙 수량을 적게 바잉을 하기때문에, 인기있는 디자인(손예진원피스처럼 연예인이 입고 드라마에 출연하면, 거의 품절이에요^^;;)이나 예쁜디자인인데, 좀 저렴한 제품들은 이미 백화점에서 완판되어요.

발망상설매장의 의상가격은...1000만원 코트가 할인되어도^^:;;최소 500만원은 지불하셔야하고,
보통 원피스는 200~400만원이라고 생각하시면되어요.

고가제품이래서, 상설매장에서도 가격이 좀 있지요^^:;;

고을같은경우는, 발망 상설매장보다는 백화점을 이용해요. 왜냐하면...백화점 실적이 있어야, 내년도에도 백화점 등급을 유지할수있거든요^^:;;(그래서 고객마다 백화점 등급을 매기나봐요;;;)

@트위드원피스,트위드자켓
고을은 항상 '트위드자켓','트위드원피스'를 이야기할때 발망과 샤넬을 언급해요. 왜냐구요? 두 제품이 질이 좋거든요. 그런데, 조금 더 발망에 손을 들어주고싶어요. 왜냐하면, 발망 600만원자켓정도의 질은 샤넬에서는 1000~1300만원을 부르더라구요. 고을이 볼때는 비슷한 재질이고 두께도 똑같은데,하나는 발망마크가, 다른 하나는 샤넬마크가 있을뿐이거든요.
뭐...인지도가 발망보다는 샤넬이 더 높고, 그 인지도를 쌓기위해 '샤넬'이 노력을 했으니까, 그건 인정해줘야겠지요^^

로에베 엠브로이드로 된것도 나와서, 다시한번 보고싶어서, 신상을 부탁했는데....365일 볼 수 있는 스타일만 진열해주셨네요.;;;;;;특별함없는...그냥..로에베

@음원출처:
Story of the queen by 김현정,공유마당,CC BY
RUNNING OUTSIDE by 김재영,공유마당,CC BY
FUNNY by 김재영,공유마당,CC,BY
Think Of Konan(싱크 오브 코난) by 김재영,공유마당,CC BY
Morning Kiss by 김현정,공유마당,CC BY
기분 by 차용운,공유마당,CC BY

... 

#발망12f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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